왜 나는 행복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복합트라우마가 빼앗아 간 '선택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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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남아 더 힘들고 깨지고 지칠래?
아니면 나가서 더 큰 세상에서 너 자신을 펼치며 살래?"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잠시 고민하더라도 두 번째를 고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익숙한 고통 쪽을 고릅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나는 행복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복합트라우마(CPTSD)를 겪은 많은 사람이 이 질문 앞에 섭니다.
※ 이 글에 나오는 사례는 여러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더 넓은 세상, 더 자유로운 삶, 더 건강한 관계가 있는데 왜 다시 힘든 쪽으로 돌아갈까요. 겉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합트라우마 생존자의 신경계는 오랫동안 '생존'을 기준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생존이 기준일 때 몸은 좋은 것보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비록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상처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일이 생깁니다.
2. "좋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믿음
복합트라우마는 상처만 남기지 않습니다.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기본 믿음까지 만듭니다. 어릴 때 이런 말을 되풀이해 들으며 자란 아이를 떠올려 보세요.
- 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
- 잘난 척하지 마.
-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
- 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
- 나를 떠나면 안 된다.
아이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살아남으려면 부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하나의 결론을 내립니다.
"좋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 믿음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아이에게는 실망하지 않고 버티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너무 조용해서, 어른이 된 뒤에도 내 생각이라고 여기며 산다는 점입니다.
3. 두 번째 길을 고르지 못한 순간
한 사람이 맨 앞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순간 첫 번째를 골랐고, 곧바로 후회했습니다.
그가 더 큰 세상을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먼저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좋은 삶이 나에게 올 리가 없어."
사람들은 이것을 겸손이나 욕심 없음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을 행복에서 미리 빼 두는 오래된 생존 신념일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스스로 물러나고, 좋은 기회가 와도 괜히 놓아 버리고, 칭찬을 받으면 민망해지는 것도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행복할 때 오히려 불안해지는 이유
어린 시절 잘하면 시기를 받고, 웃으면 곧 혼나고, 칭찬 뒤에 비난이 따라왔다면 몸은 이렇게 배웁니다. 행복은 위험하고, 성공은 공격받고, 자유는 버려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밝은 삶이 다가오면 몸이 먼저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이 반응은 좋은 일이 생겼는데 왜 불안할까 | 칭찬과 행복이 부담스러운 이유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4. 복합트라우마는 '결정하는 힘'을 빼앗습니다
복합트라우마의 가장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는 결정하는 힘을 잃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선택은 늘 다른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 무엇을 말해도 되는지
-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그러다 보면 내 감각보다 남의 기준을 더 믿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패턴을 고르게 됩니다. 행복을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근육을 쓸 기회가 없었던 것에 가깝습니다.
5. 회복은 행복을 허락하는 연습입니다
회복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쉬어도 되고, 행복해도 되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만나도 된다고 조금씩 허락하는 일입니다. 이 작은 허락이 쌓일 때 신경계도 새로운 안전을 배웁니다. 오늘 해 볼 수 있는 연습 두 가지를 권합니다.
① 좋은 것을 받을 때 몸을 알아차리기
칭찬이나 호의, 맛있는 음식처럼 작은 좋은 것이 올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세요. 어깨가 올라가는지, 숨이 멈추는지,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은지. 바꾸려 하지 않고 "내 몸이 좋은 것 앞에서 긴장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자동 반응에 틈이 생깁니다.
② 두 번째 길 쪽으로 반 걸음만
큰 결정을 한 번에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메뉴 하나, 쉬는 시간 30분, 하고 싶던 말 한 문장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 '내가 원하는 쪽'을 골라 보세요. 그리고 그 뒤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켜보세요. 몸은 경험으로 배웁니다.
6. 당신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좋은 기회 앞에서 망설이고 있나요? 더 나은 관계 앞에서 괜히 뒤로 물러나고 있나요? 행복이 다가오면 불안부터 느껴지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살아남도록 훈련된 신경계가 아직도 당신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선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글쓴이의 이야기
요즘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절을 하며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낍니다. 식사가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를 먼저 돌보는 것이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도 배워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돕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나는 이런 삶이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문장을 배우고 있습니다.
"밝고 좋은 삶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복합트라우마는 우리에게 행복을 의심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행복을 다시 믿는 과정입니다. 그 첫 선택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합니다. 오늘도 나는 익숙한 고통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삶을 선택하기로 합니다.
참고 자료
- World Health Organization. ICD-11, 6B41 Complex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 복합 PTSD의 특징으로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지속적인 믿음 등 '자기 조직화의 어려움'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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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허락하려면 먼저 나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져야 합니다. 자기연민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게 아닙니다 | 복합트라우마 회복과 나를 떠나지 않는 태도에서 이어서 풀어 봅니다.
글쓴이 윤온감 | 심신치유학 박사, 온감 트라우마 치유연구소 대표. 20년 가까이 복합트라우마와 애착 상처를 가진 분들과 몸 기반 치유 작업을 해 왔습니다.
키워드: 복합트라우마, 자기결정권, 행복이 불안한 이유, 익숙한 고통, 생존 신념, CPTSD, 트라우마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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