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회복에 선택권이 중요한 이유|몸의 통제감을 되찾는 방법
트라우마 회복에 왜 '선택권'이 중요할까요?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갈 수 없었고,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고,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경험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 회복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 감각을 몸이 다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랜 시간 치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어왔습니다. 특히 신체 기반 트라우마 회복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못지않게 그 행동을 누가 결정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움직임을 안내할 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신다면 움직여도 되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시면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아주 작은 말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트라우마를 경험한 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이 얼어붙는 것은 왜 생길까요?
위협을 감지하면 우리 몸은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반응합니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상황에 따라 몸이 얼어붙는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위협이 끝난 뒤에도 몸이 쉽게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머리로는 "이미 끝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몸이 먼저 긴장합니다.
- 갑자기 몸이 굳는다.
- 숨이 얕아진다.
- 말이 나오지 않는다.
- 머릿속이 하얘진다.
- 싫으면서도 상대의 요구를 따라간다.
- 나중에야 "왜 그때 싫다고 하지 못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반응을 단순히 의지가 약하거나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협 상황에서 신경계가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반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복에서도 "왜 그렇게 했어요?"라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그때는 선택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라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빼앗아가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감각'입니다
트라우마 경험에서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경험입니다.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러운 사건에서도 그렇지만, 반복적인 관계 트라우마에서는 이 문제가 더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싫다고 말하면 관계가 깨질 것 같고, 상대의 표정을 먼저 살펴야 하고,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먼저 맞춰야 했던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을 묻는 일 자체가 낯설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 회복에서 선택권은 단순히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근거로 행동할지 멈출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에 가깝습니다.
"움직여보세요"와 "원하신다면 움직여보세요"는 다릅니다
제가 집단이나 개인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초대형 안내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움직임을 안내하더라도 다음 두 문장은 몸에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팔을 천천히 들어보세요."
그리고
"원하신다면 팔을 조금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으시면 그대로 계셔도 괜찮습니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안내자가 행동을 결정합니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선택권이 참여자에게 있습니다.
특히 관계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억누르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선생님이 하라고 했으니까 한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이것을 해보고 싶어서 한다."
라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것만이 회복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꼭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트라우마 회복에서 움직임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지금의 몸에게 더 적절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움직임을 안내하다 보면 "지금은 그냥 있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순간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싫어도 해야 했던 사람이 지금은 처음으로 "하지 않겠습니다"를 선택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몸의 관점에서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멈출 수 있다.
나는 거절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멈춘다고 해서 반드시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몸이 새롭게 배우는 경험입니다.
움직일지 멈출지 내가 결정하는 연습
상담실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아주 작게 연습해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몸에게 물어봅니다
무언가를 바로 행동하기 전에 잠깐 시간을 두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지금 나는 움직이고 싶은가, 조금 더 있고 싶은가?"
정답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2.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합니다
몸 전체를 움직일 필요도 없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볼 수도 있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살짝 밀어볼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조금 돌려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움직였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선택해서 움직였다."는 경험입니다.
3.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멈춥니다
처음에는 움직이고 싶었지만 중간에 그만하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멈춰도 됩니다.
한번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야 한다는 규칙을 내려놓는 것도 선택권을 회복하는 연습이 될 수 있습니다.
4. '모르겠다'도 하나의 답으로 받아들입니다
"움직이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이런 반응도 괜찮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감각보다 주변 사람의 요구를 먼저 살폈던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모르겠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5. 일상의 작은 선택으로 넓혀봅니다
이 연습은 점차 일상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 지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가, 그만하고 싶은가?
- 이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가, 거절하고 싶은가?
- 조금 더 걷고 싶은가, 여기에서 쉬고 싶은가?
-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가, 잠시 혼자 있고 싶은가?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선택해도 된다"는 감각이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선택권을 회복한다는 것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입니다
트라우마 회복은 과거에 하지 못했던 행동을 억지로 완성하는 과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내가 내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 신호를 존중하면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경험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여보고, 멈추고 싶으면 멈춰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결정합니다.
오랜 시간 신체 기반 트라우마 치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중요하게 보아온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몸을 많이 움직였다고 해서 반드시 회복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회복은 많이 움직이게 되는 순간보다,
움직일지 멈출지를 내가 다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순간에 시작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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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오늘은 몸에게 선택권을 돌려주세요
오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움직이기 전에 잠깐 자신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움직이고 싶은가?
아니면 잠시 멈추고 싶은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몸에서 올라오는 작은 대답을 기다려봅니다.
움직여도 괜찮습니다.
멈춰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을 내가 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트라우마 회복은 바로 그 작은 순간들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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